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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PANIC(10)

2025. 3. 17. 17:23

 

점화

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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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하루가 멀다고 일어나는 지각변동과 해일로 인해 최근 세상에는 우울한 소식들뿐입니다. 꼭 시기를 잘못 맞춰 부활한 세기말 같아요. 폭풍전야 같은 나날 속 위축된 사람들은 누구든 모이면 소리 낮춰 수군거립니다. 이번에는 정말 종말이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불안감이 도사린 도시에서 오직 에바만이 즐거워 보입니다. 요즘 그는 돈을 흥청망청 쓰는 것은 물론이고, 거나하게 취해 있곤 합니다. 지금처럼요. 우연히 길거리에서 마주친 그는 아셔의 팔을 끌고 어느 펍에 들어가더니, 쓴 술을 입에 털어 넣으며 말합니다.
 
에바:우린 다 죽을 거야.
 
GM:빈 술잔, 취한 얼굴, 어두운 조명 너머 밤거리. 지나치게 세속적인 말세의 예언들.
 
JUST PANIC
 
  00
종말을 기다리며
 
 
2주 전, 우리는 기타 현을 뜯고 퉁기고 온힘을 다해 노래를 부르며 종말을 물리쳤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것이 무색하게도 종말은 이 땅을 뒤덮었어요. 매일이 우울한 소식 뿐입니다.
 
어쩌면 그때 일은 헛수고였나...
 
그렇다 한들 뭐 어쩌겠어요?
 
여전히 전기는 들어오고, 전파가 우리 주위를 돌고,
 
음모론자들의 말처럼 내일 당장 종말이 찾아온대도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하루가 시작됩니다.
 
아셔, 당신은 오늘 무엇을 하나요?
 
아셔:(늘 그렇듯이 아무런 생각이 없나. 본가의 낡은 컴퓨터로 아마존에 접속해 '기타 피크' 따위나 검색하곤 한다.) 배송을 오긴 하려나.
 
최근 리뷰를 보면 배송이 늦어요, 파손됐어요, 따위의 평이 대부분입니다.
 
어쩌면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셔:제기랄.
이젠 롤 큐도 안 잡힌단 말이다…
 
아, 큐는 잡힙니다.
 
이 나라는 안전불감증의 나라니까요.
 
이 시국에도 롤을 돌리는 아셔와 같은 사람이 꽤 있나 봅니다.
 
아셔:인생의 패배자들 같으니.
 
셀프디스인가?
 
아셔:아무렴. (컴퓨터 강제 종료. 인스타 스토리로 play me? 입력 후 업로드한다.)
다들 건설적인 일은 죄 관두고 그리 나가 놀면서 왜 끼워주지 않는 거야.
 
그건 아셔가 아싸라서고...
 
그래도 밀린 디엠이 두자릿수가 넘어갈 정도로의 친구는 있습니다.
 
아셔:내게 이렇게나 많은 친구가 있을 수가 있다고.
 
사실 에바 하나입니다.
 
보낸 내용을 확인해보면, 취한 상태에서 보냈는지 잔뜩 오타가 껴 있고 맥락 없는 메세지와 몇몇 릴스가 와 있네요.
 
아셔:어우. (보낸 릴스 내용이나 훑는다.)
 
밴드의 클립, 난장판인 클럽, 그리고 종말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아셔:전처럼 뭣모르고 우리 아버지 풍자 영상을 안 보냈다는 게 놀라운데?
 
종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뭐, 그럴 수밖에 없나?
 
최근 지구는 종말 신드롬을 앓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첫 시작은 하늘에서 내려온 기사단이었습니다.
 
아셔:(기사단;)
 
그 이후로 세계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지진 및 해일이 일어나 대륙마다 적어도 두세 곳은 피해를 보았습니다.
 
다행히 아셔가 있는 알타시는 지각판 움직임과 큰 관련 없는 내륙이라 잠잠한 편이지만요.
 
자연재해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동시에, 곳곳에서 많은 사고가 벌어졌습니다.
 
어느 나라는 정신 착란을 주장하는 폭도들에게 시가지나 주택가 할 것 없이 습격당하기도 했고,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장기 입원 환자들의 사례도 여러 번 뉴스에 올랐습니다.
 
그 때문에 사람들 사이에는 불안한 기운이 감돕니다.
 
누구나 “이번에야말로 종말이 찾아오는 거 아니야?”하는 말을 입에 올립니다.
 
아셔도 그런가요?
 
아셔:쩝. 온다면 순응하나 그럴 일이 있을까.
누군가 또 장자를 죽인 모양이야.
(위스키가 똑 떨어졌다. 가장 가까운 월마트가 4km 남짓, 오랜만에 버스 타구 밖으로 나섰다. 잠옷 차림을 가릴 생각은 들지 않는 모양인지 목 늘어난 티셔츠에 후드집업 걸치고, 막 산 피스터블 입에 문다.)
 
버스를 타고 월마트로 향합니다.
 
어중간한 시간, 버스는 소란스럽지 않은 도로를 빠른 속도로 내달리고,
 
금세 월마트에 도착합니다.
 
술을 사자!
 
아셔:코냑, 오늘은 코냑을 먹는 날이다, 역시 종말을 맞이하려면brandewijn.
(곁들일 햄과 치즈까지 고르고 나면은 원위지골까지 곤두선다. 절연한 아버지 카드로 소액 결제하는 것은 종말이 어쩌구- 뉴스마저 떠들석해진 지 이틀 정도 됐을 때부터. 웃음이 인다.)
어서 돌아가야 해.아싸의 삶을 즐기러.......
 
아무렴. 지금은 종말의 때니까요.
 
아셔는 다시 아싸의 삶으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이동합니다 . . .
 
아셔:아무도 안 불러주는 걸 어떡하리오?
 
가엾군.
 
짧은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도로는 벌써 혼잡해져 오는 길보다 버스의 속도가 늦습니다.
 
바퀴 한 바퀴가 구르기에도 시간이 꽤 걸려도 사람들의 고개는 폰 화면에.
 
아셔:...차에서 뜯으면 적어도 최악일까. 취하고픈데.
(여덟 정거장 앞에서 내려본다.) 걷는 것도 나쁘지 않아.
 
버스는 아셔를 내리고 다시 혼잡 속에 신호를 기다립니다.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죠.
 
이대로 집까지 향하던 순간, 어둑하던 하늘에 그늘이 집니다.
 
하늘에 무수히 많은 새떼가 분주히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거... 많아도 너무 많지 않나?
 
아셔:비가 오려나.
 
한참을 날아가는 새떼, 그들이 떨어지기도 건물 외벽에 부딪기도 합니다.
 
낮게 나는 일부 새들은 줄지어 선 차며 버스며를 세차게 박고 날아가는 풍경.
 
길가에 드문 사람들은 소리를 내지르고 사정을 모르는 차들은 클락션을 울리고.
 
종말입니다.
 
아셔: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59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이성 감소 0
 
아셔:지랄났네.
 
지랄이 난 길은 새떼의 습격으로 한참 번잡합니다.
 
집까지는 시가지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군요.
 
아싸에겐 너무 번잡하니까...ㅋㅋ
 
아셔:?
(절대 아싸라서 기가 빨린 게 아니고 새똥 맞는 건 암만 잠옷입고 마트 들렀다 집에 가는 길이래도 싫기 때문에, 시가지로.)
 
좌우간 이 소동에서 멀어져 코너를 끼고 시가지로 향합니다.
 
길거리에 사람이 북적이지는 않지만, 가게마다 어느 정도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중간한 적막과 대화 소리,
 
--:—셔... 아셔!
 
당신을 부르는 목소리.
 
부름의 주인은 이미 한참 취한 듯 보이는 *에바입니다.
 
아셔:뭐야.
내가 이어폰이라도 끼고 있었음 어쩌려고 이리 작게 불러?
 
에바:크하, 그랬으면 달려가 드롭-킥을 날렸겠지.
 
다가오는 에바에게선 아슬아슬 주량을 채워 마신 듯 술 냄새가 진동합니다.
 
옷 주머니에는 마구잡이로 구겨 넣었다가 삐죽 튀어나온 지폐들이 보이고요.
 
최근 대단히 망나니처럼 살고 있다는 소식이 사실인 모양입니다.
 
아셔:오, 곧 세상 망한다고 정말 끝장나게 즐기고 있는 모양이지?
에바, 그러지 말고 나도 좀. (끼워줘.)
 
인스타 스토리로는 매일 올라오는 각종 오락과 환락의 사진들을 마주쳤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는 도박장에서, 하루는 파티와 수영장에서.
 
어디에서 이런 돈과 시간이 솟아났는지 모를 일입니다. 곧 죽을 사람처럼요.
 
에바:그럼, 그럼... (아셔 팔을 붙잡고 삐딱하게 선다. 알콜향의 숨.)
아셔! 내 진정한 친구.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지, 지난주에 만났던가? 한 달 전?
 
아셔:(폐부까지 들어오는 냄새는 한 번 참아준다.) 이 주.
맡긴 펄프의 포스터를 전해주려 했는데, 네가 연락을 너무 안 받았지 아마?
 
에바:으음, 그래, 이 주.
하지만 나는 너무 바빴어! 세상엔 즐길 게 많더라구.
세상 망해가는 요즈음. 나는 이제 다 받아들이기로 했다. 종말도 꽤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아셔:그 즐길 것에 내가 없었다는 게 아쉽네.
나, 나도 물론 홈파티의 나열이었다. 불렀어도 못 갔을 만큼 바빴으니 걱정 마. (구라 톤 물씬.)
 
에바:(혼자 끅끅 웃는다.) 종말, 아, 종말... 종말이 영어로 뭐더라...
...흠? '그' 아셔가?
뭐, 믿어 주마.
 
아셔:그런데 너어.
애주가인 것은 알지만, 너무 과음한 거 아니야?
 
에바:지루한 얘길 하기는...
내 끝은 아직 한참이다. (딸꾹.) 같이 한잔하기나 해.
 
아셔:길거리에서.
 
에바:(그리고 그대로 아셔를 질질 끌고 인근 펍으로...)
 
아셔:에바. 우리가 이 정도 사이였던가? (말은 바로 하나 일단 따른다. 봉다리 안의 술 이미 시선 밖.)
 
에바:뭐어, 절친한 사이지. (진입한 펍. 아셔를 아무 자리에나 앉혀두고 바에서 술을 주문한다.)
 
멸망에 놓여 대화하는 것은 비단 두 사람뿐만은 아닙니다.
 
사람이 적당히 찬 어두운 펍 안에서는 이따금 ‘종말’이라거나 ‘끝’이라는 단어들이 들려옵니다.
 
가까운 자리에 홀로 앉은 사람도, 저 너머 테이블에 앉은 일행들도.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잠재우기라도 할 셈인지 오히려 가볍고 장난스러운 어조로 얘기합니다.
 
에바:(데킬라 두 잔을 들고 건너에 앉는다.)우리아셔에게 첫 잔은 내가 쏘지.
(그리고 두 눈을 감는데, 이것은 윙크이다...)
 
아셔:에바 너는 돈이 썩어나나봐. (받아들고, 원-샷.)
네가우리라고 불러준 기념으로 다음 잔은 내가 사지.
별로야?
 
에바:(허공의 손. 가만히 낯 들여다보다가.)
아셔, 아셔, 아셔. 누구네 홈파티에서는 건배를 하지 않나 보군?
두 잔은 사! (원샷.)
 
아셔:나랑 건배를 해주는 사람은 대체로 전여친 메리 밖에 없을 것이라고 작년에 네가 그러지 않았던가.
그런고로 잔을 마주대지 않았는데, 언제 변심했는지 알려줘.
난 그 놈의 종말이 오기 전에 너랑 건배를 할 수 있다니 영광인 셈 칠테니. (생맥주 두 잔 더 시켰다.)
 
에바:(눈썹을 세운다.) 변심이라 함은?
 
아셔:나랑 건배할 생각, 언제부터 들었느냐고.
 
에바:아셔! 우리는 예외 조항이지.
그러니까 우리, G-A-O-N 말이야... 너흰 언제나 열려 있어. 그게 팀이다. 종말에도!
 
아셔:그래. GAON 멤버니 그래준다는 소리라면 반갑게 받아줄게.
피시 앤 칩스 시켜줄까.
 
에바:버거도.
 
아셔:그래. (장난스러운 어조로 웨이터? 부른다. 조만간 오바이트 할 모양인 파트너 힐끗. 10$와 함께 주문은 금방 해내고.)
아, 머지않아 종말이라는데 이십 달러 더 드릴까요. (적당한 템포의 웃음. 이성 대하는 낯.)
 
에바:야박하긴. 오십 달러는 줘야지! (오십 불 지폐를 주머니에 찔러넣는다.) 종말에도 수고가 많으십니다아.
근데 너.
낯설다...
 
아셔:어디가? 네가 나와 이런 곳을 안 와본 것 뿐이야.
글쎄, 나는 네게도 항상 이런 뉘앙스의 대화를 건네니까.
익숙해져라.
 
에바:와-하. 사람을 이렇게 만드는군?
 
아셔:중의적인 말이네.
 
에바:으음.
(팁을 받은 종업원이 빠르게 생맥을 가져오면 약 두 알을 폰 꽁무니로 부숴 제 잔에 쓸어넣는다.) 너 또한 개자식이야...
 
아셔:에바.
난 네가 애덤 머시기 이후론 약을 끊었을거라 생각했는데.
다시 시작한 거야, 끊질 않았던 거야.
 
에바:날 물로 보네.
후자다! 이 시기에는 더욱 열렬해야지.
그래도 난 그녀석과 달라. (다른가?) 다르지.
 
아셔:알아, 안다만.
너는 취했다고 키스를 하려 들지는 않을테니.
그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니잖아. 맞지?
 
에바:(턱 괴고 본다. 지탱한 팔이 기우뚱댄다.)
정말?
 
아셔:세계가 망하기 전 마지막으로 키스가 하고픈 거라면 해주겠지.
오늘만 해도 너를 몇 번이나 다시 정의하는지 모르겠군.
(맥주잔 기울인다. 목이 타는지 벌써 많은 걸 다 마셨다.)
 
에바:(손짓으로 맥주 두 잔을 더 주문한다.)
하하! 아셔, 결국 너도 날 모르는 거야.
나 말이다. 끝이니 다 내어놓고 있어. (새 잔이 오기 전에 거품 없는 맥주를 비워낸다.) 너 또한 그래주면 좋겠군.
 
아셔:모르는 척 구는 거지. 난 생각보다 많은 걸 알아, 그치만, 아니 게다가... (얼음 입에 와르륵 쏟아내고 하나하나 씹어 삼킨다. 그 사이는 묵언.)
밴드에 날 꽂은 게 너야. 늘 쳐다보고 있었단 생각을 왜 한 번도 안 해줬냐.
...만취한 사람 앞두고 무슨 말을 더. 내일 블랙아웃이 올 거라고 말해줘.
 
에바:(팔이 미끄러지면 덩달아 상체가 흐트러진다.) ...허?
(종업원이 맥주 두 잔을 가져올 때까지 한참 침묵.)
 
아셔:말해달래도.
평소에도 자주 필름이 끊겼었다고 말이야.
 
에바:그으래... 나는 내일 모두 잊을 거다.
까무룩 잊어서 네 디엠에 릴스나 보내겠지.
됐나?
 
아셔:...넘어지겠어. (네 어깨에 한 손 턱 올린다. 고작 몇 잔 찌끄린 게 전부인 저는 내일 모든 것을 기억할 게 분명하기에 아무 말도 섣부를 수 없다.)
(오래간만의 마찰은 너무 쉽게 점화로 이어질 것이다. 모든 파이어스틸은 그것만 기다리지 않겠나.)
정말로, 술과 약, 도박까지 네 뇌에 자극제가 되지 못할 때 또 나를 불러줬음 해.
 
에바:(한계까지 절인 몸은 손의 무게가 가늠되지 않는다. 삐딱한 시선으로 볼 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너무나도 불공평한 일이야.
(일어서 마른 입을 갖다박는다. 축축하게 적시고야 떨어진다.)
(맥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새는 흐느적거리는 웃음. 가르치듯 말한다.)
야. 그거 알아? 어차피 우린 다 죽을 거야.
이제 정말 다 죽는다고.
 
아셔:왜.
왜 그렇게 말을.
에바, 술냄새가 나. 약도⋯
심리학
기준치: 50/25/10
굴림: 6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그는 묘하게 장담하는 것 같습니다.
 
종말의 팬이라도 되는 것처럼.
 
에바:내일의 기억도, 필름도, 너도 - 나도! 끝 앞에서 다 무용하니까.
사실은, 내가 저번부터...
(입가를 매만진다.) 아냐. 적절치 못한 말이군.
 
아셔:왜 확신에 찬 투로 서두를 꺼내놓고 관두겠다는 거야.
우리가 방금 입을 맞춰서?
제대로 하지도 못했잖아. 걱정 마, 네가 원하는 한친구타이틀을 벗을 생각 없어. ⋯마저 말해달라는 뜻이야.
 
에바:아셔, 너는 과실 제로의 충돌을 맞췄다고 표현하는구나.
하지만, 그래. 우리의 처우는 잠깐 미뤄두자. 이게 본론이야. 나는 널 마주쳤을 때부터 토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까.
(거품이 꺼져가는 맥주잔을 아셔 쪽으로 민다.)
그 일이후부터 매일 같이 악몽을 꿔. 매번 다른데 결국 같아. 오싹하고 불쾌한 것이...
봐, 어느날은 축축한 이끼가 서린 해안가 방파제 사이에 있기도 하고, 또 어느날은 깊은 심해에 가라앉아 폐가 타들어가는 통증이 있어. 꿈인데!
 
아셔:악몽이라고. 우리가 공포스러운 일을 겪은 건 맞으니 이해해.
 
에바:(마른 입술 혀 내어 축인다.) 그리고 바다 어딘가에서부터 불길한 합창이 들리는 거야. 종래엔 텔레파시처럼. 땅 위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짓밟겠다는 그, 선명한 악의가. ...
...아니, 그것과는 다르단 말야!
 
아셔:고작 이런 반응을 기대하고 말을 꺼내진 않았겠지만, ⋯뭐가 다르다는 건지 모르겠어.
PTSD가 아니라는 거야?
 
에바:(중얼댄다. 젠장, 상대를 잘못 골랐어.)
직접 보지 않으면 몰라. 저 아래에서 계속 우리를 저주하고 있다고. 전부 죽여버릴 거라고 한다니까.
이건 정말, 그때와는 결이 다르다. 그런 느낌이 아냐.
이해를 못하겠지. 나도 뭘 어쩔 수 있겠어?
 
아셔:절망 암시 때문에 부담이 크게 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래, 고작 그것이었음 하던 걸 끊고 말하기까지 하진 않았겠지
네 악몽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
(탁에 둔탁하게 부딪힌 맥주잔을 들이킨다.) 난 주량이 약해서 이것을 마지막 잔으로 해야하니.
 
에바: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머리를 몇 번 쓸어넘긴다.) 하소연 좀 했다. 그게 전부야.
(몸을 뒤로 뉘이듯 기대고 줄어드는 잔을 본다.)
차라리 종말이 왔으면 좋겠군. 안 그러면 죽어버릴 거야. 이 시간을 기억한다면 더더욱.
 
아셔:...죽어버릴 거라는 말은 좀 상천데.
종말도 좋고, 너랑 이렇게 미치광이처럼 펍에서 맥주나 홀짝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지만, 간이 쉴 시간도 만들어.
난 제정신인 에바랑 대화하고 싶으니까.
미안, 꿈 얘기나 더 해주겠어.
합창은 무슨 뜻이야, 밴드 연주 소리가 재생된다는 말인가? (듣고자 함이 명확하도록 너에게 시선 고정한다. 못 마주하던 얼굴도 이제는 쉽게 쳐다본다.)
 
에바:아셔. 나는 나야. 분리하려고 하지 마...
(나태하게 늘어진 자세로 팔만 뻗는다. 손을 잡자는 제스처인데 이것은 저 나름의 화해다.)
연주랑은 다르고. 리에, 리... (어중간한 음정.) 를리에. 프타근. 그런 말들을 막 외치는 소리. 자꾸 그것이 돌무덤에서 기다린다고, ......
모르겠어, 됐어. 이만해. 형용할 수 없고 해도 모를 말들이야.
딱 한 잔만 더 해. 한 잔이야.
 
아셔:만취한 너도 너라고 생각한다면, 넌 나를 데이트 상대로 치부한 거야. ⋯알아둬라. (주춤이다 악수한다. 오랜만에 체온이 따듯한가.)
알겠어. 원한다면 말이지. (오늘은 몇 잔을 마셔도 알딸딸한 정도에서 그칠 것만 같다. 마지막 맥주를 받아 하나 네 손으로. 그제서야 악수한 손 놓는다.)
꿈이니까. 이따가, 오늘 잠에 들거든 꿈을 꾸지 않고 잠들길 바랄게.
 
에바:난 너를. 속 나눌 수 있는 상대로 생각한 거다. (손 멀어지고 찬 잔이 손에 쥐어진다.) 친구로, 온기를 나눌 상대로.
아직도 내가 내일 아침,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길 바라?
아무것도 모르고?
 
아셔:알아. 나도 그 정도는⋯.
손을 포개고자 굴면 너는 으레 그렇듯 웃으면서 거둘 테지.
오늘은 내 턴이다. 그러니 봐주겠어.
아무것도 기억하지 마. 기억이 나도 잊은 양 굴어. 티를 내고 싶다면 내일 내게두 번째 잔을 기울일 때부터 기억이 없어.정도만 해주고 말아.
(마지막까지 전부 마신다. 머리가 띵하니 미간을 잔뜩 좁힌다.)
 
에바:(찌그러진 미간. 그 위에 뜨거운 엄지를 얹어 펴내보다가. 불현듯 머리를 귀 뒤로 넘겨낸다. 귓바퀴에 손이 닿으면 걸어둔 안대의 줄이 벗겨진다. 그것을 채어간다.)
내가 잊지 않고 네게, 그 말을 할 수 있기를.
(빈 잔에 잔을 부딪고 여럿에 나눠 마셔낸다.)
(딸꾹질.) 다음에 봐.
 
아셔:(모든 술이 동할 때까지 묵묵부답이다. 안대가 벗겨져도 시선은 항시.) 그래.
다음에.
 
에바:(손짓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주 비틀대는 걸음으로 술값 웃도는 지폐뭉치를 내어놓고 다시 밤거리로 나간다.)
 
긴듯 짧았던 시간 후 에바는 자리를 뜹니다.
 
건너 자리의 모자를 깊게 눌러쓴 사람 역시 스쳐지나갑니다.
 
주위를 둘러보면, 펍에는 빈 테이블들이 많군요.
 
아셔도 돌아가 봅시다. 집으로요.
 
아셔:(바닥에 내려둔 장바구니 -위스키와 햄, 치즈 뿐이지만.-를 직원 아무개에게 건네며 밖으로 나선다. 오래간만에 걷는 길을 따라 집으로 간다.)
 
 
01
좋은 소식, 나쁜 소식
 

 

 
새 날이 밝았습니다.
 
뉴스 알림은 소란하고 사이렌 소리가 멀리서부터 울려 옵니다.
 
그래요, 평범한 종말의 날입니다.
 
거리를 걷던 아셔는 큼지막한 글자가 적힌 상자 조각을 든 홈리스를 마주칩니다.
 
상자에 적힌 글은 ‘THE END IS NEAR’. 상투적인 경고.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한 태도로 행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외칩니다.
 
홈리스:꿈에서 그의 모습을 봤어!
이 세상을 불바다로 만들 거라고 했다고! 믿지 않으면 죽음뿐이야.
당신들 전부 죽을 거라고! 생지옥에 떨어질 거다!
 
이 또한 평범하다 치부할 수 있는 일일까요?
 
인터넷에서 분주한 종말과 음모론자들을 생각하면 그럴지도요.
 
그의 곁을 지나칠 때에, 몇 명의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는 것이 보입니다.
 
짙은 푸른색의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아셔:(아무생각이없다.걍.)
 
텅빈 눈으로 살피면BLUE-RIYEH라는 단체명이 가슴팍에 작게 적혀 있습니다.
 
블루리에? 낯선 단체명입니다.
 
아셔:(휴대폰을 든다. 페이스북에 쳐보긴 한당...)
자료조사
기준치: 40/20/8
굴림: 71
판정결과: 실패
 
ㅋㅋ
 
아셔:(언택트 시대의 둔재.)
기억이 날... 날...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56
판정결과: 보통 성공
난당.
 
GM:바보같당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나는군요.
 
해안가 주변에서 주로 활동하는 환경단체인 모양입니다.
 
유명한 단체들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해양환경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사를 종종 접한 것 같습니다.
 
노숙인 복지도 한다니 좋은 일이긴 한데, 왜 그들이 홈리스 복지를?
 
의아하게 여겨도 이들과 박스, 홈리스는 이미 트럭을 타고 사라진 뒤입니다.
 
아셔:오. 우...
 
아셔:좋은 사람들인 이긴... 한데.
 
검색하던 페이스북창에서 블루리예 홈페이지 뉴스룸에 스크랩된, 오래된 *신문 기사를 찾습니다.
 
1925년 4월 18일 자, 호주 신문사 〈시드니 블루틴〉에서 발간한 기사를 타이핑해 등록한 것입니다.
 
제목은 〈비절런트 호, 정체불명의 난파선과 회항하다〉.
 
아셔:이게 대체. 뭐, 어쩌자고 걸어둔 하이퍼링큰지 감도 안 오는데.
 
그냥 이렇게 넘깁시다.
 
아셔:다행이다.
 
아아, 이런 설정이군.
 
그리고 하루는 큰 트러블 없이 흘러갑니다.
 
그 어떤 상투적인 경고가 있대도 별 것 없군요.
 
다음날. 연일 안 좋은 소식만 울렸던 TV가 웬일로 잠잠합니다.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던 세계적인 악운이 겨우 소강상태에 접어들었습니다.
 
비로소 평온의 날, 아셔는 오늘 하루 무엇을 하나요?
 
아셔:...오늘은 밤새 마시는 거다. 빼기 없기야. (남의 집이다. 저녁이 뭐야, 다음의 다음날이 되더라도 플스 5와 술잔을 기울일 친구만 있다면 거뜬하지 않겠어?)
 
집주인은 플스를 TV에 연결하는 데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5분, 10분... 술만 축이는 시간.
 
아셔:어이. 자네에게 정비공의 능력이 없다는 걸 알겠으니 좀 비키지?
(입에 치킨을 집어넣고 기름기를 닦는다. 마찬가지로 플스에 애를 먹는다.)
 
친구는 그 꼴을 내려다보고 있다가, 못 참고 TV의 채널을 바꿔댑니다.
 
어색한 적막을 깨는 배경음용 뉴스가 켜집니다.
 
귀기울이면 예쁜 아나운서가 대형 쓰나미로 번질 것이라고 여겨졌던 해일이 기적적으로 잠잠해졌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하늘이 도왔다”고 말하며, 이 이례적인 데이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고 합니다.
 
만약 쓰나미가 찾아왔다면 해안 마을들에 적지 않은 타격이 왔을 거라고 하네요.
 
이어서 잡히지 않던 산불이 차츰 진화되고 있다는 소식도 들어옵니다.
 
뉴스가 좋은 소식을 말하고, 프로그램이 끝날 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플스 연결에 성공합니다.
 
하지만 벌써 진이 빠지는군요...
 
아셔:뭐? 지.
차남을 장남으로 승급시켰나.
 
친구:뭔 헛소리를 하는 거냐?
다시 술이나 가져와! 게임이나 하자구.
 
아셔:하, 설치를 성공했다는 것에 만족하자고. 더 식기 전에 닭을 아작내야겠어. (친구 입에 다리 집어넣는다. 가슴은 제 몫.)
 
친구:(다리 물고 조이스틱을 까딱까딱.) 빼기 없기로 한 자식이. 벌써 만족이야?
 
아셔:먹고 하는 수도 있잖아. 번개치는 날 혼자 못 자겠다고 말한 게 누군데. 쫄리면 잡아야지. (엄지로 가방 가리킨다. 여차하면 돌아가?)
 
친구:개자식. 누가 친구 너 하나일 줄 알고. (하나일 듯?)
 
아셔:그러든가. 어찌됐든 좀 쉬자 이거지. 무서워 죽겠다던 이상기후가 잠잠해 진다는데 피파가 중요해? (음량을 무지막지 올렸다.)
 
친구:언제는 국제정세, 이상기후 관심 있던 사람처럼 구는구만... (무지하게 툴툴댄다.)
 
아셔:...네가 너무 관심이 없는 건 아닐지.
 
그러고보니, 종말이니 뭐니 맹신하던 에바에 대해 떠오릅니다.
 
종말은 다 헛말로 이 세상이 잠잠해진다는 걸 알고 있을까요?
 
아셔:듀이, 에바 알아?
왜 내 밴드 원정 멤버 여자애 있잖나. 내가 여즉 초록 머리라고 불렀던. ⋯원래 막무가내랬지만 갑자기 더 약에 꼴은 사람처럼 굴더라고. 종말이 올 것이라 맹신해서 그렇겠지?
멍청하다고 해야 할지도 몰라.
 
친구:어... 알지?
근데 나야 말도 거의 안 붙여 봤고. 네가 더 잘 알 거고. 누구 말마따나 세상사 관심이 없어서 말이다.
 
아셔:뒷담화에 가담하지 않겠다는 거야?
...메리가 너한테 환승했을 때 널 버렸어야 했어. 됐다, 연락하지 마. (쌍뻐큐.)
 
친구:(다리뼈를 던진다.) 에라, 싸운 여자애처럼 굴기는.
내가 알아봐야 뭘 알겠느냐고!
 
아셔:...놀린 거잖아. 너나 나나 대학에 친구라곤 없는데.
 
친구:멋몰라도 여자에게는 정공법인 법.
직접 물어보던가. 뭐, 전화로. (요컨대 내게 귀찮게 굴지 말라.)
 
아셔:(걷어찬다. 남의 집 남의 방이지만 가끔 낮잠도 잘 정도로 익숙한 곳. 침대에 걸터앉아 익숙한 번호를 입혁한다. F라고 저장된 수신번호로 전화 건다. 여러 차례 목도 가다듬구.)
 
긴 수신음이 이어지다, 낮은 음질의 에바 음성이 전파를 타고 전해집니다.
 
에바:...여, 큼, 아셔.
왜, 웬일인데?
 
아셔:잘 들어갔어. (물음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음색의 변화가 없다.)
 
에바:그래. 기억은 조금 날렸지만, 저. (침묵하면 배경의 소란이 들린다.)
그러니까. (무언가 중얼댄다.) 두 번째 잔부터.
 
아셔:밖이야? 전화를 괜히.
그래.
전화를 괜히 건 모양이야⋯.
 
에바:끊을 거야?
 
이전에는 나름의 여유라도 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마치 무언가에 쫓기듯 불안한 것이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집니다.
 
우리의 문제일까요? 아니면...
 
아셔:됐어. 바쁜 사람 붙잡고 내가 무슨 말을 하겠다고.
듀이 알지, 모를 수도 있는데 내 대학 친구야. 얘랑 놀다보니 네 생각이 나서 그만.
나중에 콜백 줘. 족보, 줄. 줘야 할 게 남아서 그래.
 
에바:자꾸. (호흡.) 앞서지 마.
얘기해. 듀이, 알아. 가끔 봤다. 근데 내가 거기서 왜?
 
아셔:러닝 뛰어?
글쎄다. 내가 널 짝사랑한다고 토로했더니 고백이나 하라길래. (농담하는 투. 웃음기 어린. 밖에서 듀이가 무어라 지르는 소리 같은 게 여러 번 단말마로 깨져 들린다.)
 
에바:......끊고 싶으면 말을 해.
 
주변이 매우 시끄럽고 혼잡한 모양입니다. 목소리가 약간 묻히는데요.
 
유심히 들으면, 이것은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하나의 구호를 열창하는 소리입니다.
 
거대한 음성의 물결은 마치 합창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발음이 흩어져서 무슨 내용인지는 알아듣기 어렵네요.
 
간신히 “프타근!”이라는 마지막 단어만 알아듣습니다.
 
아셔:프타근.
대체 무슨 이상한 사이비에 노출된거야, 에바.
모르는 사람 함부로 따라가면 어떡해?
젠리 깐다 진짜.
 
에바:너 나 좋아해? (박자가 맞지 않다.)
 
아셔: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73
판정결과: 실패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59
판정결과: 실패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89
판정결과: 실패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40
판정결과: 실패
매혹
기준치: 15/7/3
굴림: 51
판정결과: 실패
 
전파 상태라서 안 통하나 봅니다.
 
아셔:너, 내게 너무 잔인해. 봐주겠다고 했잖아. 나느은⋯ (타이틀을 벗어나서 좋은 적이 없었었는데. 무어라 중얼인다. 이내 마른 세수 하는 소리가 수화기 넘어로.)
놀리면 좋아?
 
에바:너, 말이 점점 이상해지고 있어.
안다고 했잖아. (뇌는 진창. 혀가 꼬이는데 수화기 너머의 개자식은 실수를 놓치지 않는다. 울리는 소리에 정신이 아찔.) 술 마셨어? (따라서 말에는 맥락이 없다.)
 
아셔:응. (모든 말에 일맥상통한 대답을.) 고작 이런 말을 하려고 건 전화가 아니었어 에바.
술을 좀 마셔서 이래. 기분이 붕 떠서. 내가 했던 말은 전부 실수로⋯ 실수라고 하면 더 캐묻지 않을 거지.
(목소리가 점점 멀리 들린다. 휴대전화를 아래로 내린 모양. 끊을까 골몰이 인다. 오른쪽 검지 손가락은 이미 전원 버튼에 위치했고 누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참, 쉬이.)
 
에바:(한참 말이 없다.)
나는 적어도 네 앞에서 의지로 하지 않은 게 없어.
(전해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은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끝으로 통화 종료음만이 남는다.)
 
아셔:⋯나는 네 앞에선 항상 의지대로 말을 해본 적이 없고. (끊어진 전화기에 대고 읊조린다. 방문 밖을 나서면 잠든 듀이가. 이제서야 이성이 제 안에 무탈함을 깨닫는다.)
 
밤새 함께하기로 한 녀석은 먼저 잠들었습니다.
 
더 있는 의미가 없겠군요.
 
집으로 돌아갈까요?
 
아셔:(육즙이 마르지 않는 화수분을 곧바로 정리하기엔, 상대가 어딨는지를 모른다! 집으로 걸어간다. 시가지를 거쳐서.)
 
시가지를 경로로 하여 귀가합니다.
 
어쩌면 지난번처럼 만날지도 모르죠.
 
오늘 하루. 시가지는 우울감이 덜합니다.
 
뉴스는 좋은 소식을 흘려 보내고, 주위에서는 긍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행인은 큰 소리로 통화를 나눕니다.
 
행인:저지에 성공했나? 정말, 정말 수고했네.
이게 모두 이든 군, 자네 덕분이야.
금방 그리로 가겠네. 자네가 오겠다면 그것도 좋고.
그래. 우선은 안전한 숙소를 마련해줘야겠군! 곧 보기로 하세.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울한 소리만 가득했던 전에 비하면 도시 전체에 활기가 돌고 있습니다.
 
역시 종말이라고 거창하게 부를 징후들은 아니었던 걸까요?
 
조금씩 나아지는 듯한 도시 속에서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아셔는 잠에 빠져듭니다.
 
정신을 차리면 아셔는 축축한 이끼로 가득한 곳에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침대에 누워 있던 것 같은데?
 
발아래 축축한 이끼들이 아셔의 무게에 짓눌려서 역겨운 진물을 뱉어냅니다.
 
사방은 그저 어둡기만 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얼굴에 와닿는 서늘하고 짠바람. 이곳은 바다 근처로군요.
 
일순, 아래로 곤두박질칩니다.
 
도시와 함께 가라앉은 아셔는 저 깊은 바다 아래까지 처박힙니다.
 
숨이, 숨이 안 쉬어져.
 
폐가 간신히 붙든 공기들이 기포가 되어 눈앞을 허망하게 지나갈 때,
 
해저의 갈라진 틈 사이로 파동이 흘러나옵니다.
 
그것은 기묘한 형태로 변환되어 아셔의 귓속을 파고듭니다.
 
인간의 음성 혹은 짐승의 신음 같은 울부짖음이 저 멀리까지 퍼집니다.
 
아셔:
지능
기준치: 75/37/15
굴림: 3
판정결과: 극단적 성공
 
GM:아셔는 사특한 숭배를 이해해 버립니다.
죽은 크툴루가 를리에의 돌무덤 속에서 꿈을 꾸며 기다린다.
 
순간 해저가 갈라지고, 백만 년의 저주가 응집된 돌무덤이 부상합니다.
 
그 틈새로 서슬 퍼런빛을 내는 눈과 마주칩니다.
 
아니, 그것을 감히 인간의 언어로 형용해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의 마음을 비치듯 케케묵은 악의와 광기로 점철된 기관이라는 것만 명확합니다.
 
아셔는 직감적으로 깨닫습니다.
 
이것이 ‘크툴루’라고 불리는 위대한―인간과 그 비슷한 생물이 이 땅에 존재하기 전부터 행성을 누비던 진정한 지배자라는 사실을.
 
그가 깨어나면 황홀하고 자유로운 대학살이 도래할 것입니다.
 
두개골을 쪼개듯 끔찍한 공포가 아셔를 직격합니다.
 
아셔:
SAN Roll
기준치: 75/37/15
굴림: 75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이성 감소 1
 
직후, 아셔는 꿈에서 깨어납니다.
 
내가 방금 비명을 질렀던가?
 
방의 불을 모두 켜고 이불에 둘러싸여도 쉽사리 공포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방금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에바의 꿈 이야기를 들은 탓일까요?
 
확실한 건 아셔도 그 공포의 일면을 맛봤다는 겁니다.
 
아셔:(...구역질을 해야만 하는데 입에서 당장이라도 물이 튀어나올 것 같아진다. 파리한 얼굴로 화장실 가는 오 미터 남짓한 거리를 여덟 번이나 쓰러지고.)
(눈구멍, 이공으로도 몇 번이고 기포가 올라온다. 이미 꿈에서 깨었음에도 헤어나오지 못한. 혼잣말을 할 겨를이 없다. 욕조에 숨을, 쓸개즙을, 소화되지 못한 정신력까지 게워내고 나서도. 네가 꾼 꿈이 이런 것이었을까 다만 추측할 뿐.)
(비명을 참으려 꽉 깨문 이에서 뿌드득 소리가 나면, 다시 수화기를 잡아본다. 걸어도 될까.)
 
아셔:(제 일이 아닌 것처럼 편린을 끼워 맞추고 구경하고 싶었다. 하나 감당하지 못해 붕괴된친구에게 말을 거는 것이 수순처럼 느껴졌다. 내가 네 꿈을 이어받은 게 아니라 그저 동화된 것 뿐이라면 어쩌지. 전화를 건다.)
 
수신음이 계속되기만을 반복.
 
연락을 받지 않는군요.
 
아셔:(얼굴이 처참한데 몰골까지 처참할 순 없었다. 내가 이어 받느라 요즈음 못 잔 잠을 몰아 자는 중일 수도 있으니까. 최대한 멀끔하게,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네 집으로 향한다. 일순 그곳이 그녀의 집이 맞기는 한지 의문이 들어 밴드부 하얀 머리 아무개에게 묻기까지.)
 
하얀 머리 아무개는 잠결에 맞다는 답을 줍니다.
 
동이 트는 시간, 사람들은 새 날을 시작하기 위해 채비하고 아셔는 에바의 집으로 향합니다.
 
 ㅇ02
운명의 교차로
 
 
---THE DAY
 
오늘도 큰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식은 없습니다.
 
세상은 안정된 궤도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아셔의 마음만이 불안합니다.
 
기억을 더듬어 에바의 집에 찾아가면, 이른 시간임에도 여러 사람들이 그 앞을 서성거립니다.
 
아셔:뭐야.
 
그들끼리 나누는 이야길 듣노라면 그들이 모인 까닭은 채무관계로 귀결됩니다.
 
아셔:...뭐야?
 
알맞지 못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더라니.
 
아무래도 금전 상황이 복잡한 모양이군요.
 
아셔:어쩐지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나 했다. 새로운 아버지라도 구한 줄 알았지.
 
아셔:영혼까지 끌어다 썼나보군. 이들 중 하나가 장기밀매로 넘기지 않았으리란 판단이 안 서는데.
...통화를 그따구로 마무리 지어놓고 지랄. 죽어있기만 해.
 
사람들의 뒤로, 문이 빠끔 열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진을 친 상황에 내부에 있진 않겠지만...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아셔:(원래 같았음 마찬가지로 채권자인 척 채무 이행 유책에 해당이 없는 양 들어섰겠지만, 제법 날카롭다. 할 줄 아는 욕은 다 구시렁이며 안으로.)
 
내부는 과연 더럽습니다.
 
그보다는 언제 청소를 한 건지 물건들이 널려 난장판입니다.
 
도서관의 책, 널린 신문지, 틀어둔 채 방치된 컴퓨터는 하나같이 심해나 괴물에 관한 내용들입니다.
 
손대지 않고 널려둔 지 한참 된 것 같지만요.
 
아셔:어휴.
따져서 뭘 할까. (살핀다아...)
 
그다지 특별한 건 없습니다.
 
지능만큼 자료조사 능력도 개판이므로...
 
평범하게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아셔:(ㅋㅋ.)
(채권자들 사이에 특이항 사람은 없는가. 예를들면 블루... 블루 무엇.)
 
그때와 같은 유니폼 차림도 없거니와,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음...없당
 
아셔:(그럼 나 여기 왜 왔는뎅?)
(능지 롤?)
 
전화 안 받으니까 그냥 왔자나
 
아셔:(나는 어디로 가야하는가... 다시 우리집으로 갈까...)
 
집ㄱㄱ...
 
아셔:(부재중 발신 통화 23통. 집으로 간다.)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돌아갑니다.
 
겨우 하늘이 밝던 길인데 이제는 해가 완전히 떠 사람도 꽤 있습니다.
 
그중 어제 보았던 행인을 마주칩니다.
 
함께 있는 것은 두 사람. 그리고 하나의 익숙한 얼굴.
 
저 남자, 이든이 아닌가요?
 
아셔:(진지하게 이든이 누군지 까먹었었다. 눈 좁히고 개꼬라본다...)
 
애덤의 동생...이라는 주석을 붙여도 애덤을 까먹었을까
 
이쪽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한 그들은 “미시간호? 미시간호라고 합니다!”, “서두르게!” 라는 대화를 나누며 어딘가로 바쁘게 뛰어갑니다.
 
아셔:호수?
 
무슨 재미있는 일이라도 하는 걸까요.
 
아셔:(일단은 따라간다. 누가봐도 석연찮아.)
 
그들에게 시선이 팔려 있으면... 따끔!
 
목에 따끔한 감각을 느낍니다.
 
돌아보면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낯선 사람이 아셔를 붙들고 있습니다.
 
이틀 전, 명함을 준 그 블루리에 활동가입니다.
 
아셔:와... 아.
납치 방법이 너무 뻔한 것 같은데.
 
그렇습니다.
 
속수무책으로 무릎이 꺾이며 시야가 감깁니다.
 
무거운 눈을 뜹니다.
 
정신을 차린 아셔는 양팔을 뒤로 묶인 채 어두운 곳에 쓰러져 있습니다.
 
난데없이 납치당해버렸군요.
 
아셔:일개 소시민한테 자꾸 짱구 극장판 같은 일이 일어난다 참.
SAN Roll
기준치: 74/37/14
굴림: 91
판정결과: 실패
 
GM:이성 감소1
 
시간이 지나고 어둠에 익숙해지다 보면 사물의 윤곽이 어렴풋이 보입니다.
 
크고 작은 화물들이 든 창고인 것 같습니다.
 
이따금 바닥에 떨어진 펜이 도르르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미세하게 기울어진 바닥.
 
이곳은 배 안입니다.
 
아셔:...예지몽인가봐.
 
아까의 따끔거린 감각은 무언가의 약이었을까요?
 
정신을 차리기 힘들지만, 눈을 감았다가는 다시 그 꿈이, 찾아올 것만 같습니다.
 
정신을 차려 보자고요.
 
아셔:
건강
기준치: 40/20/8
굴림: 52
판정결과: 실패
(그래 죽여라 X발.)
 
하지만 눈이 감겨오는 것을 어떡하리오...
 
정신력으로 버티기라도 합시다.
 
아셔: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54
판정결과: 보통 성공
...이대로 쓰러지면 바다에서 깨든 바다에서 깨는 꿈을 다시 꾸든 할 것 같아서, 못, 쓰러지겠어.
 
역시 의지로 안 되는 일은 없는 법.
 
약기운이 조금 가신 것 같습니다.
 
조금이라도 정신을 차리게끔 내부를 둘러볼까요.
 
손은 묶였으나 한곳에 매여 있지는 않으니 방 안을 돌아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셔:웩⋯ 더 토하면 담즙까지 쏟을 것 같은데, 내가 납치범한테 말을 안 했어 멀미 심하다고⋯⋯.
이내 묶인 손 풀어본다. 넘어질 때 코가 깨지는 건 사절이기에.)
근력
기준치: 70/35/14
굴림: 68
판정결과: 보통 성공
헐겁게라도, 좀.
 
힘을 주나 손목이 세게 조여 아플 뿐이네요.
 
밧줄로 단단히 결박당해 있기 때문에 혼자서는 풀기 어렵습니다.
 
아셔:(힝.)
 
대신 힘을 주며 몸체 돌리다 보면 발치에 1피트 정도 되는 단단한 물건이 닿습니다.
 
선단에 날카로운 부분이 스쳐요. 이것으로 밧줄을 긁어낼 수 있을지도.
 
아셔:(쭈구린다.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 던 것을. 어떻게든 집는다. 끊어본다면⋯)
 
아셔:
손놀림
기준치: 30/15/6
굴림: 30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아셔는24분만에 무사히 밧줄을 잘라냅니다.
 
아셔:24분이나 여기에 투자할 생각은 없었는데.
 
아셔:(어두운 건 알겠으나 짚어가며 문이나 창문, 전원 스위치 기타 등등 뭐라도 찾는다. 주머니에 휴대전화는 건재한가?)
 
몇 미터쯤 벽면을 짚어대다 보면 전등 스위치가 만져집니다.
 
주머니에 지갑 등은 그대로지만 핸드폰은 없습니다.
 
연락 수단은 빼앗긴 거겠죠.
 
아셔:(애초에 배 위라면 전화가 수신될 리 없다. 전등 스위치 누른다...)
 
달칵.
 
불이 들어오며 내부 모습이 훤히 보입니다.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벽면을 가득 채운 알 수 없는 문자의 향연입니다.
 
단순히 창고인 것 같던 이곳은 기묘한 술식이 빼곡합니다.
 
얼마간 들여다보면 그 사이에서 ‘를리에’나 ‘크툴루’ 같은 단어들을 읽어냅니다.
 
일이 매우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아셔:드디어 내가 미쳐 돌았나. 신화 생물이 여기 왜 적혀있어.
 
저 술식들은, 대체.
 
아셔: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3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GM:이성 감소 0
 
아셔:볼드모X 아니었나. 왜 자꾸 쳐 등장하지 크툴루가.
 
이 상황을 인식하고 있을 때. 바깥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가까워집니다.
 
소리가 아주 가까워지면 창고 문이 열립니다.
 
아셔:(귀 기울인다.)
(안 기울여도 됐넹.)
 
두 명의 사람이 누군가를 창고 안으로 밀어 넣고는 문을 도로 잠급니다.
 
아셔:읏, 엇. 음?
 
바깥은 어두웠으므로 그 누군가를 알아보는 데엔 시간이 걸립니다.
 
에바:아니, 꼭 이렇게 하지 않아도......
 
아셔:(상황 파악이 더디다.)
 
그리고 그건 곤란한 목소리로 몸을 추스르는 에바입니다.
 
아셔:(ㅋㅋ 귀여워.)
 
에바:안녕. 이라고 해야 할까...
 
아셔:난 안녕 못하신데.
 
에바:(허리춤 매만진다. 문에서부터 멀어지고, 방황하는 걸음.)
 
아셔:무슨 일인지 설명해내. (여러 차례 한숨 내쉰다. 누가봐도 휘몰아치는 감정을 열심히 참는 표정으로.)
 
에바:(선반을 등진 채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입술 축이고.) 어디서부터?
 
아셔:네 남은 라크로스 선수 생활의 수명이 끝났을, 그러니까⋯ 주변 이름 미상의 개새끼들한테 돈을 꾸기 시작한 이유부터.
(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양팔 뻗는다. 제 생각엔 이제 한숨보다 과호흡에 가까운 숨을 다시 한 번 내쉬고.) 그리고, 실물인지 확인 좀 하자.
 
에바:(당장이라도 소리치고픈 충동을 참는다. 미적대는 발로 다가가 잠깐을 생각하고, 팔 안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안기는 모양새가 된다.)
세션 첫날에. 트라이앵글만 덜렁 들고 왔잖아. 난 네가 미친놈인 줄 알았다. (맞지 않은 말.)
 
아셔:논점 흐리지 마. 내가 먼저 얘기해? 크툴루가 어쨌네 저쨌네 하면서 내가 오늘 아침에 몇 번이나 숨을 헐떡였는지 읊어줘?
형용할 수 없는 것에게 너를 빼앗기는 줄 알았어. 찾다가 찾다가 여기까지 기어 들어왔는데 칭찬은 못해줄 망정. (도리어 함락. 내가 여기까지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이제는 알 거면서 이러기야. 던져주는 네 몸을 잡아다 안으면, 외려 변변찮은 용해 임계점이 기승이다. 어줍잖은 풋풋함이 품 안에 있는 너를 보고 안도한다. 이래선 안되는 거 알지.)
 
에바:(손아구로 양뺨을 잡아 시선 고정시킨다.) 찾았다고 말했어.
기특하다... (손 당겨다 뺨에 입술 세례. 애한테 하듯 군다. 애처럼 구는 것도 같다.)
(모든 걸 뭉갠다. 이전 같은 알콜향 풍기지 않지만 여전히 취객처럼 군다. 양껏 멋대로 취하고 손 놓는다.)
어제, 어제? 말했던 거야. 종말이라서 그게 전부. 나는 언젠가 내 모든 것 다 태워서 살고 싶었고, 나는 끝을 알고, 끝까지 불태워야 했고......
 
아셔:(점화. 이게 판결이고, 네게 한 일주일 항소할 시간을 줄 생각은 있다. 치기 어린 얼굴로 트라이앵글을 들고 입부할 땐 그녀가 과연 아셔 니버를 알까. 혹시 싫어하는 건 아닐까. 언젠가부터 사랑받지 못하는 게 너무 서러워서, 여태껏 몇 날며칠을 훼손했다. 비탄 남아나질 못하는 상실이 내게 서러움만 물려주었다. 티는 안 낼 생각이었어 에바.)
(다그치듯이, 애가 아니라 무릇 성인 남녀가 그러하는 것처럼 섣부르게 입을 맞춘다. 시시껄렁한 미국인 대학생의 태를 아직 벗지 못했겠으나, 노려보는 시선이 적나라하다. 뭐라도 적선해 줘.)
오늘이 지나면 두 번째 잔 이후부터 연락도 한 통 안 한 평소의 그것이 되어줄 수 있으니까⋯. (감싸 쥔다. 무엇을? 뻐근하다면 또 어디가?) 내가 잘도 절제하겠다. 우리 무사히 나가고 나면 그만 보자. 나까지 다 태워서 살아.
네가 세상의 끝을 잘못 알고 있었다면, 그리고 네가 정한 세상의 끝이 오늘이었다면 내가 여기 남아서 끝이라는 걸 증명하면 돼. 뭐라도 오늘 안에 끝나면 되는 거야. 우리 사이가 끝나는 것.
돈은 내가 갚을게.
 
에바:(트라이앵글을 쥔 남자애; 최초의 피력인 양, 치기 어린 얼굴. 아셔 니버는 발 딛고 서 거센 어필을 하지 않고 에비타는 멀대를 밀치고 마이 볼 소리친다 - 정언이 뒤집힌다. 노골적인 입질에 웃음이 눌리고 뭉그러지면 실성 같다.)
(파티 종반 복도에서 문지방에서 하나처럼 얽힌 녀석들과 같은 모양새다.) 괜찮아. 괜찮아 아셔. 어차피. (아주 대단한 비밀이라도 되는 체 귓가에 입을 대고, 손 하나를 덧댄다. 들숨.)
우린 다 끝이야!(날숨......)
(관계 신용 재산, 몸과 정신을 소모하니 역설적으로 충만해졌다. 숨 넘어가는 합창 찢어지는 스피커 기도를 역류하는 오버도즈. 그러니까 완벽은 덜어내는 것이지. 이를테면, 관계의 순결성, 눈알 하나의 분량만큼. 거뭇한 안대를 찔러넣는다. 물을 엎지르는 건 쉬운 일이다. 우리는 수습하지 않아도 된다. 다시는 주워담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에바는 그렇게 생각했다.)
계승하지 않는다. 전복되지도 잔류하지도 않는 거야.
그냥, 끝까지 함께하면 돼. (그리고. 절컥. 부시가 쳤다.)
 
에바:(드러누운 채다.) 여기가 어디고, 누가 그랬고 하는 것. 설명이 필요해?
 
아셔:솔직히 이제 안중에도 없기는 한데⋯ 헤헤. (멋쩍은 얼굴을 무마하려는 웃음.) 원한다면 해도 돼.
 
에바:(귀여운 것ㅋㅋ 존나 뽀뽀한다.)
 
아셔:(뒷걸음질..............)
 
에바:?
정 궁금하지 않으면 몰라도 되는 거고.
(몸 일으켜 세워 앉는다.) 구경이나 하자. 시간... 많을걸?
 
아셔:시간은 또 왜 많아. ...대체 내가 여기 왜 있는 거야 근데?
뭘 많이 알아서 데려온거면 이미 바다에 수장되었어야.
 
에바:(무언가 말을 하려다, 주변의 상자를 뒤진다. 대놓고 딴청.) 이야, 여기 신기한 게 많네...
 
아셔:어차피 대답해줄 때까지 물을 거야. (한 걸음이면 가까워진다. 네 머리끈 잡고, 풀어본다.)
 
에바:나중에...... (늘어지는 말꼬리. 보는 체를 안 한다.)
 
아셔:그럼 그것만. (말 고른다. 신중하게, 한참을.) 나 오늘 여기서 죽는지.
 
에바:(손이 멈췄다가, 재동작.) 음, 하하, 으하하... 납치는 그런 법이긴 하지.
 
아셔:그래. (생각보다 덤덤하다. 그냥 그대로 네 머리 한 쪽 앞어깨로 옮겨주고 드러난 어깨에 얼굴이나 얹는다.) 죽여도 돼⋯.
 
그리고 순간, 특정할 수 없는 어떤 굉음이 울립니다.
 
곧 배가 크게 출렁이며 좌우로 기울어집니다.
 
두 사람, 중심을 잡아요!
 
아셔:
민첩
기준치: 30/15/6
굴림: 2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에바:
민첩
기준치: 80/40/16
굴림: 37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둘은 중심을 잘 잡고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자와 선반은 비틀대며 밀려오고,
 
그에 밀려 에바가 데굴데굴 바닥을 구릅니다.
 
쿵, 벽에 부딪치는 에바.
 
그리고, 툭.
 
아셔:(낯은 데시근하나 홍채는 속절없이 떨린다.)
 
아셔의 안대가 굴러떨어집니다.
 
무슨 일을 겪은 것인지 검게 변색한 채입니다.
 
아셔:(본인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른다 그냥 상황 파악을.)
.......괜찮, 아니. 안, 안 다쳤어?
 
에바:(잠시 머뭇대다. 소리 없이 입술을 움직인다. 답이라기엔 이것은,)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38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셔: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52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지금부터 전투에 돌입합니다.
에바의 기습으로 매 턴은 에바 - 아셔 순으로 진행됩니다.
아셔의 턴입니다.
 
아셔:(반박을 할 생각이 없다. 그냥 가만 선다⋯.)
 
GM:밤티짓으로 정신에 큰 충격을 먹어서 진지한 진행을 포기한다
 
에바:(웃는 것 같다. 계속...)
정신
기준치: 50/25/10
굴림: 15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GM:아셔 정신 대항 판정
 
아셔:
정신
기준치: 75/37/15
굴림: 45
판정결과: 보통 성공
 
GM:대항 판정 실패
 
무언가, 이상합니다.
 
입에서 짠맛이 나요.
 
아셔는 돌연 숨을 쉬기 어려워집니다.
 
텅 비어야 할 곳에 서늘하고 짠 바닷물이 차오릅니다.
 
허파에 바닷물이 차오르고 있다고요.
 
아셔:
SAN Roll
기준치: 73/36/14
굴림: 93
판정결과: 실패
 
GM:이성 감소 1
 
금방 숨이 막히고 폐가 타들어 가는 것처럼 저립니다.
 
아셔:(켁. ...구역을 참아본다.)
 
바다에 빠져 익사하는 것과 다름없는 고통이 내부에서부터 좀먹습니다.
 
아셔:나 혹시 꿈을 꾸는 중인가...
익숙한 고통인데.
에바. ...그냥 아까 좀 제대로 물어볼 걸 그랬나. 대답 안 해줬을 것 같, 기두 한데에. (제 뺨 후려친다. 들어오는 물이 없는데 폐가 수장되고 있다면 이것은 공포로 학습한 정신병이 분명하기에. 아직 아무것도 모르겠다만.) 내가 너무 못했나. 그래서 그래?
 
GM:아셔 체력4감소
 
꺽꺽대는 아셔 앞에서 에바는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면서 자신을 변호합니다.
 
에바:아냐, 그게 아니라, 종말은 찾아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는 거야.
나도 이렇게 될 줄 몰랐어. 너도 그냥 나처럼 대하려는 줄 알았다고!
나도, 너를, ......
 
아셔:
건강
기준치: 40/20/8
굴림: 27
판정결과: 보통 성공
 
아셔:
건강
기준치: 40/20/8
굴림: 9
판정결과: 어려운 성공
 
아셔:(기침을 무더기로 쏟아내는데 건강할 리가.)
 
GM:아셔의 턴이나 행동 불능으로 자기 턴 내내 에바의 자기변호를 듣습니다.
라운드 종료
 
에바가 되도 않는 소리를 한참 늘어놓을 때, 배가 크게 흔들립니다.
 
쓰러진 아셔와 달리 마구잡이로 돌아다니던 에바는 중심을 잃고 크게 넘어집니다.
 
경사진 벽으로 거의 날아가듯 처박히고 기절하는 모습입니다.
 
이제 폐에 물밀던 썰물이 되돌아갑니다.
 
아셔는 기침과 함께 폐에 찬 물들을 뱉어냅니다.
 
아셔:(쿨럭⋯. 쿨럭쿨럭쿨럭켈록쿨럭.)
 
9분 전에 섹스하고서 이상한 소리를 한 벌을 받은 걸까요?
 
아셔:?
 
저 에바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청 공교롭게 옆에 있는 밧줄로 구속해도 됩니다
 
아니면 그냥 둬도... 맘대로
 
아셔:(정신 박혀있는 사람이라 그런가 끝까지 진도 나간친구가 헛소리 좀 한다고 묶거나 하진 못하겠다. 참... 일어나면 경황이나 물으려 손목 쥐구 있는다......)
 
  03
여명과 그림자
 
 
바깥에서 희미하게 사이렌이 들리더니 메가폰 음성이 뭉개져서 들립니다.
 
이 소리에 에바는 아셔의 손 아래에서 정신을 차립니다.
 
경찰이 갑판으로 올라타는 소리가 창고까지 울립니다.
 
에바:(소리 들으며 사태 파악. 망했구나! 눈이 한참을 굴러가다, 아셔에게 박힌다.)
야... 아셔, 아셔. 미안하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어. 그러니까, 악의로 그런 건 아니고...
너 왜 납치했냐 물었지이. 교단 신고식을 해야 했대! 그래서 너를 제물로 써야 한대!
 
아셔:(...여즉 눈 감고 있었다. 아직 눈도 못 뜨고 손목 쥔 손에 힘을 가한다.)
 
에바:납치한다고 할 때만 해도 나처럼 신도로... 받아주려는 줄 알았다. 신도가 되면 종말이 닥쳤을 때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난 그래서 좋았다, 내심.
아셔, 나, 종말이 일어나지 않으면 정말로 죽어. 알지? 수습할 수 없다고. 한 번만 봐줘... 어려운 말 아니잖아.
왜, 너도 이런 세상이 싫은 적 있었을 거 아니야!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 ......물론. 너는 죽겠지만. 내가 열심히 연구해서 되살려 주겠다. 해저에 괴물이 잠든 세상인데 죽은 사람을 되살리는 주문도 없을까 봐? 너 하나 못 살릴까 봐?
그러니까, 그러니까... (축처져서는 바닥에 안면을 붙인다.) 미안해. 여유가 없어서 그랬어. 그냥 당황해서,패닉했을 뿐이라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내가 이상한 게 아니야. 세상이 끝난다는데 어떻게 정신이 멀쩡할 수 있겠어?
 
에바:제발 죽어주면 안 될까? 제발. (웃는다.)
...너 나 좋아하잖아......
 
아셔:넌 뭐가 그렇게 쉽고, 뭐가 그렇게 어려웠을까.
내가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 알고 있었어서 그 저녁에 붙잡고 펍으로 데려간 거야?
(짝사랑하는 여자를 보는 얼굴이라기엔 지나치게 무표정하다. 기분이 더러워져서, 지금 내 앞에서 머리를 짜디짠 나무판자에 박고 저더러 죽어달라 말하는 이의 감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구멍 난 눈에선 땀이 흐른다. 아니면 아까 삼켰던 바닷물이, 것두 아니라면 어디 부딪혀서 이마라도 까졌나. 종전에는 소리 냈다 네가 얼굴을 들까 봐 부득불 젖히고야 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너한테 화대를 주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봤는데에. 어, 하하...
목숨 부지하자고 몸 파는 거 아니야. 네가 대뜸 죽어달라고 우리 집 문을 두드렸어도 이렇게까지 기분이 나쁘진 않았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네 허리에 손을 가져다 대게 했을 거라는 거잖아, 가당키나 해?
 
아셔:이래선 안 됐어. 내가 또 삶에 회의적이게 만드는구나.
(아셔 니버에겐 남은 졸피뎀과 애더럴이 없었다. 맨정신에 모든 걸 감당하는 건.파울첼란의 두 줄 시를 읊는다 슬픔의 열 손가락이 세상을 덮는다 더 이상 당신의 눈을 덮을 눈이 내리지 않는다 내 안의 동굴이 아득하다 아늑하다.폭설.)
나는... (내 사랑이 뉴욕타임스 문화면에 실렸으면 하는 거창한 꿈만 안 꾼 게 아니고, 우리가 영원히 친구를 할 수 있을지 초여름 브라질 구아바 열매로 꽃점을 쳐볼 생각도, 합주가 없는 날 둘이 만나서 식사를 하자는 말을 권해볼 생각도, 뭐가 됐든 선 한 번 넘을 생각도 못 해봤단 말이야. 내가 불쌍하
지도 않아? 붕 뜬 기분을 잠재울 새도 없이 타임라인이 흘러 지나간다. 알타경찰국 반경에 있는 모든 사람 가운데 유일한 부적응자였다.)
차라리 덜컥 사랑한다고 해주지.
 
에바:(공중에 짠내가 나는 것 같다.)
젠장, 날 아무나 자는 여자로 보는구나. 네 속의 내가 누군데. 넌 대체 누굴 아는데? 집어치워 아셔 니버.
너, 날 걱정했지. 애인처럼 굴었어. 네가 나를... 찾았다고 말했잖아. 매번 어떤 얼굴을 했는지 모르는 거야. 좋아하면, 끝내질 말고 계속되면 돼! 너도 나처럼, 다 태우고, 열망을 함께해서.
봐. 키스는 어땠어? 내 손목은 맥동해? 엉망인 생활에 몸이 물러졌어. 따뜻했지. 기분 좋았지? 그리고 이제 감당이 안 되지......
내가 어떻게 할까. 지금 널 사랑한다고 하면. 믿을래? (말하고서도 어처구니가 없다. 진창이다.)
 
아셔:그런 말이 아니잖아. 에바, 정신 좀 차려봐봐, 응?
살고 싶어서 단 한 순간도 좋아한 적 없는 남자한테 사랑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는 네가, 벼랑 끝에 몰려있는 지금 아무하고나 못 잘 사람이야? 솔직해져.
네가 모럴이 없는 사람이라는 말을 하고픈 게 아니야.
사실 너한테 사랑한단 말을 듣고 싶지도 않았어. 그놈의. 하⋯ 우리 집 열쇠는 뒷문 창틈에 뒀고, 내 방 들어가면 Gleim이 있을 거야. 표지 넘기면 통장이 있으니까, 또. 음.
어쩌면 너한테 실망을 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낭만인지 청춘인지 것도 아니면 그냥 너한테 수몰돼서 판단이 안 서.
끝까지 처절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웠다. 화대는 일시불로 넘겨주마⋯ 원하는 게 고작 목숨이라니 싸기도 하지. (죽을 마음 한창이다. 항소할 시간을 주려고 했는데 그마저의 일주일도 부여받을 수 없는 짝사랑이라면 그냥 그만두는 게 나았다. 미시시피주의 아무 시민을 붙잡고 물어도 같은 답이 나을 것이다. 얼굴이, 표정이 경망스럽게 무너진다. 무슨 감정을 덧두기려고 해도 도무지 나아지지가 못하는 상태 그대로 격양된 감정을 쏟, 쏟아내어.)
 
아셔:너한테 베갯머리송사의 자질이 있다는 게, 진짜 기분 개 좆같아. 이제 아무한테도 쓰지 마라⋯⋯⋯.
 
에바:이 병신새끼. (이 대목에서 손을 뿌리치고.)
너한테 끌렸다고 말하고 있잖아! (한 손으로 멱을 잡았다.)
...그래. 사랑은 아니야. 사랑은 아니지.
그래도--
 
쾅!
 
활짝 열린 문간으로 두 사람처럼 너덜너덜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가장 앞서 오는 사람은 익히 아는, 우리의 이든입니다.
 
그 다음의 사람은, 누구?
 
아무튼 모르는 사람이군요.
 
두 사람은 잠깐 당혹스러운 낯을 하더니, 금세 상황을 이해하고 아셔와 에바를 떨어트려 놓습니다.
 
- 힘겨운 시간이었으나, 굳이 서술하지 않음. -
 
겨우 에바를 구속해낸 후 이든이 아셔에게 다가옵니다.
 
이든:그, 그러니까 이쪽이... 니버. 괜찮아?
이전 상황을, 설며...설명할 수 있겠어?
 
이든의 동행인:(속삭인다.) 이녀석 정신이 나갔군.
 
아셔:뭘 설명해 시발.
 
이든:어, 엄, 어떤 상황이언, 었는지?
 
이든의 동행인:아냐, 됐어 이든. 뭐든 힘든 시간이었겠지.
어쨌든. 당신이 그 제물이지?
경찰이 알아서 수습할 테니 저 여자는 두고 나가자구.
당신은 피해자라는 걸 어필해줄 테니까.
 
아셔:예이. (상황 이해도가 마않이 딸리는 것 같기도 하지만 그건 옆 초록 머리한테 진상을 한개두 안 물어보고 뽀보나 했으니 그러려니 한다!)
 
세 사람은 창고에서 벗어나 갑판으로 나갑니다.
 
새벽이 밝아오는 호수에는 번쩍거리는 경광등 빛이 가득합니다.
 
수갑을 찬 사교도들이 엠마 호를 둘러싼 경찰선으로 줄줄이 연행되고 있습니다.
 
사복을 입은 한 남성이 이든과 그의 동행인들에게 다가와서는 악수를 청합니다.
 
레그라스 경위:당신이 탐사자... 이든 씨군요. 담당 형사 레그라스입니다. 큰 도움이 되어주셨습니다.
 
아셔:(탐사자...)
 
레그라스 경위:그리고 당신은... (한 박자 늦게 경찰수첩을 꺼낸다.) 저는 존 R. 레그라스 경위입니다. 혹시 성함이? 또 여기와는 관계가 어떻게.
 
아셔:(경위면 그다지 높지도 않은데?) 아셔 폴 니버고 별로 연관 없습니다. 자살 희망자 구하는 전단지 보고 신청했네요. (아주 껄렁하다.)
 
레그라스 경위:헐...네
 
이든의 동행인:이 사람도 완전히 피해잡니다, 피해자.
그렇죠? (무슨 사인처럼 아셔한테 윙크.)
 
아셔:(이해못했다걍꼬라본다........)
 
이든의 동행인:하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모양이라.
 
아셔:그니까 내가 내뱉어야 하는 대사가 있는 겁니까?
난 이든 이 등신이 왜 여깄는지도 이핼 못햇는데 좀 바랄 걸 바라지.
 
레그라스 경위:(떨떠름한 얼굴.) 아, 예, 뭐. 알겠습니다.
(주변 둘러보다 창고편을 본다. 내부의 에바를 가리키고선.) 탐사자 씨, 저 사람도 교단 관계잡니까?
 
아셔:(...너도 탐사자야? 일단 같이 꼬라본다.)
 
이든:(속삭인다.) 널 납치한 건 '심해의 전령'이라고 하는 종교 집단이고, 불법으로 화물선을 탈취하는 과정에서 살인을 저질러서 경찰이 온 거야. 우리는 원래부터 교단을 쫓고 있었고, 다른 주에서부터 경찰들과 협조해서 행적을 쫓은 조력자고. (말도 안 더듬는 스피드웨건.)
 
아셔:(설명 고맙다...?)
 
이든의 동행인:엄, 어... 저도 잘. 그쪽은 아마 여기, 아셔 니버 씨가 알 겁니다. 같이 있더군요. (아셔 어깨를 툭툭.)
 
레그라스 경위:그렇군요. 그래서 니버 씨, 저 사람이, 교단 관계잡니까- 뭡니까?
그러니까 저 사람이 범죄에 가담했다면, 말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아셔:모르죠. 마침 누나한테 고백하려고 했는데, 구경들 하시렵니까? (상황 파악 마쳤다. 눈 도로록 굴리다가 뭔가 한 열여덟살 남고딩같은 얼굴루 배시시 농담이나.) 원래 알던 사람이고, 저랑 술 잔뜩 마셨을 때도 교단 얘기는 일절 안 한 걸 보면-
그다지 관련이 없지 않을까아... 하하.
 
레그라스 경위:(노트에 끼적인다.) 으-흠. 이름은?
 
아셔:에에바아 킨타니야아아...?
아뇨. 에비타, 칸, 타니야. (에바 집 들어갔을 때 여럿 재촉장에서 이름 보았다.)
 
레그라스 경위:흠. (수염 난 턱을 두엇 쓴다.)
(이내 머리를 벅벅 긁고.) 뭐, 그러시다면야. 이리로 오시죠. 항구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그, 저 사람 - 킨타니야 씨도.
 
아셔:누나, 나오래요.
 
에바:(밧줄이 설프게 감긴 채로 아주 느으리게 나온다. 이든 옆에 섬.)
 
이든과 그의 동행인은 남아 더 둘러 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아셔와 에바는 경위를 따라갑니다.
 
아셔:(아셔 킁킁 아셔 쫑긋 아셔 총총)
 
떠오르는 해와 난간을 끼고 경찰선에 이릅니다.
 
앞서 걸은 아셔가 먼저 경찰선으로 넘어가고,
 
에바가 그 뒤를 따를 때, 경위는 경찰수첩으로 에바의 어깨를 툭툭 두드립니다.
 
레그라스 경위:아무리 종말이다, 뭐다 해도 하지 말아야 할 짓이 있어요.
정상 참작이 다가 아니란 말입니다.
 
에바:(부동. 느리게 입을 축인다.) 그, 무슨 말인지... (누가 봐도 찔린 사람.)
 
레그라스 경위:숭배자들 얘깁니다. 가시죠.
 
그리고 경위는 두 사람을 보냅니다.
 
아셔와 에바는 일행은 붉고 푸른 빛이 가득한 호수를 떠납니다.
 
동쪽 하늘에서부터 여명이 밝으며 간밤의 소란을 희석하고,
 
에바는 그 빛이 싫은 듯 구석으로 기어 가서는 다 끝났다고 중얼거립니다.
 
패닉이 가라앉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두 사람을 태운 배가 뭍으로 돌아갑니다.
 
 
(Na):……
……
 
마지막 조사를 받고 경찰서에서 나오는 길.
 
수첩에 무언가 끄적이던 이든이 아셔를 돌아보며 묻습니다.
 
이든: 여, 여기, 이다음 내용은 뭐라고 적으면 좋을까?
우리 같은 일을 겪는 사람들이 또 생긴다면, 갈피를 잡을 수 있게 조언을 남기고 싶어.
 
아셔:너어, 그런 감성도 지니고 있었냐?
 
이든:(어깨 으쓱인다.)
 
며칠간 그의 질문에 대답했던 아셔도 수첩에 무슨 내용이 적혔는지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마무리만을 남겨두었네요. 이든은 마지막 멘트를 부탁한다며 아셔에게 펜을 넘깁니다.
 
곁에 있는 에바가 슬쩍 수첩을 들여다보지만, 감히 자신이 말을 얹을 수는 없었던지 눈을 돌립니다.
 
아셔:(에바에게 보이지 않게 써내린다. 아주아주 악필에 초딩 글씨.)
(원래 인간은 자주 오작동하고,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일은 어차피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당신에게도 대신 죽어줄 미련 가득한 사람이 있기를 바란다. 원래 판타지 소설에도 로맨스는 나오기 마련이니까.)
........놀리지 마라?
 
이든:하하, 이 사, 상황에서도.
엄, 아무튼. 고마워. 다음에 연이 닿으면, 좋은 일로 다시 보-보자. 종말 없이.
 
아셔:말 그만 절어라. 등신이냐.
 
이든:응............
 
아셔:어깨 피고.
그 검은 머리랑 흰 머리 사이에서 눈치 보이면 며칠은 재워줄 테니까 오고.
집 주소는 안 알려줄 거지만.
 
이든:으응......
 
이든은 우울한 얼굴과 쭉 편 어깨로 먼저 떠납니다.
 
아셔:(등신 ㅋㅋ.)
 
종말의 그림자가 걷힌 도시, 여느 때보다 맑은 알타의 하늘.
 
우린 결국 죽지 않았고, 말세의 예언은 헛소리가 되었습니다.
 
이제 겨우 종말의 열병을 회복한 두 사람을 반기듯 흰 비둘기가 하늘을 유유히 비행합니다.
 
 
Credit
 
.KPC생환
 
.PC생환
 
Staff
 
.KP지지
 
.PL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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